분묘 연고자를 찾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습니다. 파산재단으로 낙찰받은 강진군 임야에는 여러 기의 분묘가 있었지만, 누가 관리하는 묘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처음에는 단순했습니다. 연고자를 찾을 수만 있다면, 이 물건의 출구전략도 쉽겠다 생각했습니다.
관공서에 문의하고, 마을을 수소문하고, 이장님에게 편지도 보냈습니다. 그래도 답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결국 추석을 앞두고 산에 “분묘 연고자를 찾습니다”라는 현수막까지 설치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묘석을 들여다봤습니다. 그제야 흩어져 있던 이름들이 가족관계로 연결되기 시작했습니다. 묘석의 기록과 오래된 등기부등본이 맞아떨어지는 순간도 있었습니다. 이번 글은 분묘 연고자를 찾아간 그 과정을 정리한 세 번째 이야기입니다.

전남 강진군 파산재단 임야 진행 경과
2026년 4월, 네오파트너스의 대주주가 개인 자격으로 파산재단 물건을 낙찰받았습니다. 전남 강진군 소재 임야 2필지입니다. 지분이 아닌 전체 소유권을 취득하는 물건이었지만, 한 가지가 마음에 걸렸습니다. 분묘였습니다. 위성사진만 봐도 여러 기의 분묘가 보였습니다.
※ 파산재단 낙찰|전남 강진군 임야 물건 분석과 향후 계획
낙찰 이후에는 파산관재인과 매매계약을 체결하고 잔금을 납부했습니다. 소유권이전등기도 직접 진행했습니다. 우편으로 등기를 신청했다가 접수가 불가능하다는 연락을 받고, 결국 5월에는 강진등기소까지 직접 내려갔습니다. 그리고 등기신청을 마친 김에 곧바로 임야로 향했습니다.
첫 임장에서 확인한 현장은 예상보다 복잡했습니다. 위성사진에서 보던 것보다 분묘가 많았고, 곳곳에 묘석도 세워져 있었습니다. 한문이 섞인 오래된 묘석을 현장에서 모두 읽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일단 사진부터 찍었습니다.
※ 전남 강진군 파산재단 임야 ②|강진등기소 방문과 첫 임장
그 뒤부터 본격적인 숙제가 시작됐습니다. 이 묘들은 누구의 묘일까. 지금도 관리하는 사람이 있을까. 그리고 그 사람을 찾을 수 있을까. 관공서에 전화를 걸고, 마을을 수소문하고, 오래된 등기부와 묘석에 적힌 이름을 하나씩 맞춰봤습니다.
분묘 연고자를 찾기 위한 관공서·마을 수소문
첫 임장을 마친 뒤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단순했습니다. 묘석만 들여다보고 있어서는 연고자를 찾기 어렵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오래된 분묘인 만큼 행정기관이나 마을에 남아 있는 정보를 먼저 확인해보기로 했습니다.
면사무소와 강진군청 문의
2026년 7월, 면사무소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장사 업무는 강진군청에서 총괄하고 있었습니다. 해당 지역 일대는 3개 마을로 나뉘어 있고, 각 마을마다 이장님이 따로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마을 주민들이 오래전부터 알고 있는 분묘라면 이장이나 어르신들을 통해 단서를 찾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026년 8월에는 강진군청 장사업무 담당부서에도 문의했습니다. 토지 지번을 알려주고 확인을 요청했지만, 해당 위치에는 행정상 별도로 등록된 분묘가 없다는 답변을 받았습니다. 그렇다고 연고자가 없다는 뜻은 아니었습니다. 오래된 개인 분묘가 모두 행정자료에 등록돼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담당자는 마을 이장이나 주민들에게 문의해보고, 추석을 앞두고 연고자를 찾는 현수막을 설치하는 방법도 권했습니다. 결국 다시 마을로 범위를 좁혀야 했습니다.
마을 이장 수소문
처음에는 행정구역상 해당 지역인 A마을을 중심으로 알아봤습니다. A마을회관에도 전화를 걸어봤지만 연결되지 않았습니다.
지도를 다시 살펴보니 또 다른 가능성이 보였습니다. 실제 분묘가 있는 산의 위치는 B마을 쪽에서도 상당히 가까웠습니다. 행정구역만 보고 A마을에만 문의할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B마을까지 범위를 넓혔습니다.
이번에는 A마을과 B마을 이장님 앞으로 각각 편지를 보냈습니다. 일반 우편보다 전달 여부를 조금이라도 확인하기 위해 준등기를 이용했습니다. 임야의 소유자가 바뀌었다는 사실과 토지에 여러 기의 분묘가 있다는 점, 묘석에서 확인한 몇몇 이름을 적었습니다. 혹시 분묘의 연고자나 가족을 알고 있다면 연락을 부탁드린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며칠 뒤 A마을 이장님과는 통화가 됐습니다. 하지만 B마을 이장님과는 연락이 닿지 않았습니다. 관공서에도 물어봤고, 마을에도 편지를 보냈습니다. 이장님과도 통화했습니다. 하지만 정작 분묘의 연고자가 누구인지는 아직 알 수 없었습니다.
결국 다음 방법을 써보기로 했습니다. 이번에는 연고자가 직접 보게 만드는 방법이었습니다.
‘분묘 연고자를 찾습니다’ 현수막 설치
관공서와 마을을 통해 연고자를 찾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방법을 바꿔야 했습니다. 우리가 연고자를 찾아다니는 대신, 연고자가 먼저 연락하게 만드는 방법을 생각했습니다.
마침 추석도 얼마 남지 않은 시점이었습니다. 오래된 분묘라도 추석 전에는 가족이나 후손이 벌초를 위해 찾아올 가능성이 있습니다.
현수막 제작
현수막 문구는 복잡하게 만들지 않았습니다. 목적은 하나였습니다.
“분묘 연고자를 찾습니다.”
해당 토지에 있는 분묘를 관리하거나, 연고자 또는 가족을 알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연락을 부탁드린다는 내용을 넣었습니다. 멀리서도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노란색 바탕에 붉은색 문구를 사용했습니다.
크기는 180cm×90cm로 제작했고, 총 2장을 준비했습니다. 산에 설치해야 했기 때문에 사방에 아일렛도 추가했습니다. 현수막을 고정할 끈까지 챙기고 나니 다시 강진으로 내려갈 준비가 끝났습니다.
3개월 만에 찾은 현장
2026년 8월 29일, 다시 강진으로 향했습니다.
다행히 걱정했던 비는 거의 오지 않았습니다. 대신 예상하지 못했던 문제가 하나 있었습니다. 풀이었습니다.
5월 첫 임장 때와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산으로 들어가는 입구부터 풀이 무성하게 자라 있었고,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사람 키에 가까울 정도로 우거진 곳도 있었습니다. 불과 몇 달 사이였지만 현장은 전혀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그래도 여기까지 내려온 이상 돌아갈 수는 없었습니다. 풀을 헤치며 분묘가 있는 곳까지 올라갔습니다.
준비한 현수막 2장은 서로 다른 분묘 구역에 나눠 설치했습니다. 한 곳에는 분묘가 있는 구역의 측면에, 다른 한 곳에는 분묘가 있는 구역의 정면에 설치했습니다. 벌초나 성묘를 위해 찾아온 사람이면 최대한 쉽게 볼 수 있는 위치를 골랐습니다.

현수막을 설치하고 나니 이제 할 수 있는 일은 하나였습니다. 기다리는 것이었습니다.
다만 이번 방문의 목적은 현수막 설치만이 아니었습니다. 첫 임장 때 제대로 읽지 못했던 묘석을 다시 확인해보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예상하지 못했던 단서가 하나씩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묘석 분석으로 가족관계도 작성
현수막 설치를 마친 뒤에는 묘석을 다시 살펴봤습니다. 첫 임장 때도 사진은 찍어두었지만, 당시에는 묘석의 내용을 세밀하게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이번에는 묘석 하나씩 위치를 구분하고, 글자가 보이는 면을 다시 촬영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예상보다 중요한 단서가 나왔습니다. 단순히 이름 몇 개를 확인한 수준이 아니라, 한 가족의 세대 관계가 묘석 안에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4기의 분묘에서 확인된 가족관계
한 분묘 구역에는 모두 4기의 묘가 있었습니다. 가장 아래쪽 묘석에서는 과거 이 토지의 소유자였던 A씨의 이름을 확인했습니다. 그 옆에는 자녀와 며느리, 손자들의 이름도 함께 새겨져 있었습니다.
묘석을 따라가 보니 A씨에게는 여러 명의 자녀가 있었고, 그중 일부는 배우자와 자녀 이름까지 함께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단순한 피장자 이름만 적힌 묘석이 아니었습니다. 후손 관계까지 비교적 구체적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중간층에 있는 2기의 분묘는 하나의 묘석을 함께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묘석에는 장자, 자부, 손, 손부, 증손, 손녀 등의 표현이 이어져 있었습니다.
내용을 하나씩 정리해보니 이곳은 A씨의 부모 세대 묘로 판단할 수 있었습니다.
묘석을 기준으로 가족관계를 단순화하면 대략 다음과 같은 구조였습니다.

흥미로운 점도 하나 있었습니다. 아래쪽 A씨 묘석에는 자녀로 분명히 기재된 사람이 있었는데, 부모 세대 묘석의 후손 명단에서는 그 이름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묘석을 세운 시점이나 기재 방식의 차이일 수도 있지만, 이유까지는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
가장 위쪽에는 분묘 1기가 더 있었습니다. 위치와 세대 배치를 보면 A씨의 조부 세대 묘로 추정할 수 있었습니다.
묘석의 이름과 오래된 등기부등본
여기서 더 흥미로운 부분이 나왔습니다.
묘석에 적힌 A씨의 자녀 이름 가운데 일부는 이미 익숙했습니다. 이 임야의 과거 등기부등본에서 봤던 이름이었기 때문입니다.
등기부를 확인하면 A씨 사망 이후 자녀 중 한 사람에게 협의분할에 의한 상속등기가 이뤄졌고, 이후 다시 다른 자녀 명의로 소유권경정등기가 되어 있었습니다.
처음 등기부를 봤을 때는 두 사람이 어떤 관계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현장 묘석에는 두 사람이 모두 A씨의 자녀로 적혀 있었습니다.
등기부에서 봤던 이름과 묘석에서 확인한 가족관계가 연결된 순간이었습니다.
현장에서 만난 마을 주민의 이야기도 하나의 단서가 됐습니다. 한 어르신은 A씨를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학교 선생님이었고, 이후 교감이나 교장을 했던 사람으로 기억한다고 했습니다. 실제 묘석에서도 교직 경력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동안 따로 흩어져 있던 정보들이 조금씩 맞아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묘가 여러 기 있는 임야였습니다. 이제는 누가 묻혀 있고, 가족들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으며, 그 이름이 과거 등기부와 어떻게 이어지는지까지 확인할 수 있게 됐습니다.
추석 이후 대응 계획
현수막까지 설치했으니 이제는 잠시 기다려보기로 했습니다. 추석 전에는 벌초를 위해 가족이나 후손이 분묘를 찾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 과정에서 현수막을 본다면 연락이 올 수도 있습니다.
물론 아무 연락도 오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지금 바로 다시 강진으로 내려가거나 추가 작업을 할 생각은 없습니다. 현장까지 이동하는 데 시간과 비용이 적지 않게 들기 때문입니다. 추석 연휴가 끝날 때까지는 일단 기다려볼 계획입니다.
연락이 온다면 우선 분묘와의 관계부터 확인할 생각입니다. 실제로 분묘를 관리하는 사람인지, 가족관계는 어떻게 되는지, 앞으로 이 토지를 어떻게 정리할 생각인지 이야기를 들어봐야 합니다. 가능하다면 법적 절차보다는 협의를 통해 문제를 정리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반대로 추석이 지나도록 아무 연락이 없다면 다음 단계로 넘어갈 예정입니다. 지금까지 확인한 묘석과 등기부등본, 현장조사 자료를 다시 정리하고, 분묘로 인한 토지 사용 문제를 정리하기 위한 법적 절차도 검토할 계획입니다.
처음 이 임야를 낙찰받을 때만 해도 분묘의 연고자를 찾을 수 있을지조차 알 수 없었습니다. 지금은 상황이 조금 달라졌습니다. 아직 해결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는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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